느린학습자관련기사[느린IN뉴스] "나는 햇빛을 먹고 노는 청소년 농부입니다" 특별한 농부들의 입학식

2025 주말마을학교 중고등 느린학습자 프로그램 '흙을 찾아서 나를 찾아서'가 열리는 '스튜디오 흙'. (사진 = 신유정 기자)

한바탕 봄비가 지나가고 새로운 생명이 고개를 들던 지난 6일 아침, 경기 화성시 송산면 독지리의 유기농 포도 농장 '스튜디오 흙'에서 특별한 입학식이 열렸다. 화성, 수원, 성남 등 각지에서 모인 11가족, 느린학습자 청소년과 부모들이 중고등 느린학습자 주말마을학교에 참여하기 위해 농장을 찾았다.

주말마을학교의 이름은 바로 '흙을 찾아서 나를 찾아서'다. 흙을 만나고, 밥을 짓고, 씨를 뿌리는 과정에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이 프로그램은 단순한 농촌 체험을 넘어, 느린학습자 청소년들이 자연과 더불어 성장하는 배움의 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입학식 사회는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중학교 3학년 선배 농부가 맡았다.

"우리에게 햇빛을 모아주고 맛있는 양식을 제공해 주는 농작물과 물과 나무, 지렁이와 별, 미생물들을 생각하며 눈을 감고 감사하겠습니다. 감사!"

본격적인 입학식에 앞서 '생명의례'가 진행됐다. 청소년 농부들은 자연과 생명에 감사함을 전하며 농부로서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스튜디오 흙'을 운영하는 이상배 농부가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 =신유정 기자)

 '스튜디오 흙'을 운영하는 이상배 농부와 느린학습자 농부들의 인연은 지난 2023년, 일회성 귀촌 체험 프로그램에서 시작됐다. 이후 아이들이 자연에서 뛰놀며 배우기를 바라는 학부모들의 요청에 힘입어, 작년부터 매달 정기적으로 열리는 주말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다.

이상배 농부는 이날도 신입생 농부들을 따뜻하게 맞으며, 수업 전 알려줘야 할 내용이 있다고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지식은 목마를 때 물 마시고, 숨 쉬는 거예요. 그걸 알려준 사람은 누구죠? 나예요. 제일 중요한 선생님도 나고요."

처음에는 아리송한 표정을 보이던 아이들도 입을 모아 대답했다. 바로 '나'자신이 삶의 가장 중요한 선생님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내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온몸으로 자기다워짐을 느낄 수 있는 시간, 이곳에서의 첫 수업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중고등 느린학습자 11명이 입학식에서 청소년 농부 선서를 외치고 있다. (사진 = 신유정 기자)

이곳에 모인 11명의 청소년 농부들의 선서로 입학식은 마무리됐다.

"나는 햇빛을 모으는 청소년 농부이다. 나는 햇빛을 먹고 노는 청소년 농부이다. 나는 햇빛처럼 빛나는 시를 쓰는 청소년 농부이다."


이상배 농부와 청소년 농부들이 함께 불을 지피고 밥을 짓고 있다. (사진 = 신유정 기자)

입학식을 마친 뒤, 청소년 농부와 부모들은 '생존 음식 만들기' 활동을 통해 함께 점심을 준비했다. 직접 밥을 짓고 나누는 시간은 마을학교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이날도 부싯돌로 불을 지피고, 각자 가져온 쌀을 합쳐 가마솥 밥을 지었다. 저마다 챙겨 온 반찬을 나누자 금세 든든한 한 상이 차려졌다. 아이들은 밥을 두 그릇씩 뚝딱 비우며 서로의 그릇에 정을 담았다. 그렇게 쌓은 밥정은 배보다 마음을 더 따뜻하게 채웠다.

너도나도 소매를 걷고 설거지까지 마친 아이들은 본격적인 농부의 일과를 시작했다. 감자가 자신의 고향인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랑을 만들고, 씨감자를 심었다. 손에 흙을 묻히며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자연과 말을 섞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이 지나야 꽃이 핀다는 이상배 농부의 말에 한 아이는 "사람도 어려움을 통해 배우고 깨달음을 얻습니다!"라고 또박또박 대답했다.


청소년 농부들이 땅콩을 심고 있는 모습. (사진 = 신유정 기자)


"책상 앞에서 사람이 완성되는 게 아니"라는 이상배 농부의 말처럼 땅콩을 심으면서는 세상 사는 법을 배웠다. 이상배 농부는 땅콩의 새싹을 찾으며, 땅콩과 우리는 모두 배꼽으로 세상과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땅콩을 심으며 아이들은 먹고, 노는 것 속에 삶의 철학이 담겨 있음을 온몸으로 배웠다. 오늘 자연이 알려준 사실은 바로 '우리는 혼자 살 수 없으며, 연결돼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활동을 마무리하며 아이들은 직접 쓴 시와 기록을 노트에 남겼다. 이날 오행시의 주제는 직접 심은 '감자와땅콩'이었다.

감: 감동의 시간 / 자: 자신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시간 / 와: 와! 좋네 덕분에 / 땅: 땅처럼 넓고 / 콩: 콩처럼 쑥쑥 자라는 우리들

감: 감자들이 / 자: 자글자글 / 와: 와글와글 / 땅: 땅 속에서 / 콩: 콩콩 뛰어 비닐들을 날리려고 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눌러담은 청소년 농부들의 노트에는 싱그러운 봄날의 흙내음이 묻어나 있었다. 입학식에서 한 선언처럼 청소년 농부들은 햇빛처럼 빛나는 시를 써냈다. 자신의 생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춤을 추며 즐기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교실에서는 엉뚱하거나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는 행동들이 이곳에서는 모두 자연스럽고 멋진 '나만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 어떤 모습이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환경이 만들어지자 아이들도 마음껏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다.

청소년 농부의 부모이자 화성시 느린학습자 부모회 '늘품'의 곽영미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농장에서 함께 점심을 짓고 먹어요. 식구라는 건 밥을 같이 먹는 사이잖아요. 아이들이 이곳에서 함께 밥을 먹으며 차곡차곡 쌓은 정이 다른 곳에서도 해맑게 지낼 수 있는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라고 말이다.

이후 주말마을학교의 프로그램은 계절의 흐름에 따라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주말에는 초등학생 느린학습자 농부들의 돌봄농장인 '씨앗도서관 반짝반짝'의 입학식도 열린다. 이날 농부들이 심은 씨감자는 여름이면 수확의 기쁨으로 돌아올 것이다. 흙과 함께 나를 찾아가는 시간을 보내며 11명의 농부들이 천천히, 그리고 단단하게 자신만의 뿌리를 내리게 되길 바란다.

출처 : 느린인뉴스(https://www.slowlearnernews.org)

https://www.slowlearnernews.org/news/articleView.html?idxno=854